Tuesday, March 1, 2011

메국수 나물 비빔밥 - 안동김씨 보백당종가

이것이 무슨 맛일까? 맛이라는 것이 있긴 한 건가? 쓴맛? 단맛? 신맛? 어느 한 가지 맛이 툭 튀어나오지 않는다. 먹을수록 머리속에 물음표가 늘어난다. 냉면 사발만한 그릇 한가득 있는 밥알과 나물들, 국수 가락이 수저와 함께 한참을 놀더니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한 맛은 먹는 내내 물음표를 배가시켰는데 다 먹은 후에는 뿌듯하다. 든든하다. 갑가지 삶의 용기가 몰려온다. 정글을 헤쳐나간 탐험가의 용기가 이런 것이 아닐까! 밀림을 탐험하다가 열매를 따서 목을 축이고 그 위로 양쯔강의 물줄기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맑은 공기를 담뿍 들이마신 후에 밀려오는 차분한 뿌듯함이다.


이름? 이름은 뭐, 굳이 붙이자면…
이 음식은 지난 2009년 12월 31일 (음력 12월 17일)안동 김씨 보백당 종가의 불천위(4대가 지나도 사당에서 신주를 옮기지 않고 자손대대로 제사를 지내는 신위)제사에서 맛본 ‘메국수 나물 비빔밥’이다. ‘메국수 나물 비빔밥’은 생소한 이름이다. “종부님 이 음식이름이 뭐죠?” “이름? 이름은 뭐, 제사 지내고 난 다음 먹는 음식이지. 굳이 이름 붙이면 ‘메국수 나물 비빔밥’이 맞을려나!” 종부가 지어준 이름이다. 종부는 제사상에 올리는 국수를 ‘메국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메’는 제사 때 신위 앞에 놓는 밥을 말하는데 설날에는 이 메가 떡국이 되기도 하고 추석에는 송편이 되기도 한다.

‘메국수 나물 비빔밥’은 제사상에 올렸던 5가지나물을 밥 위에 얹고 그 위에 고명처럼 메국수를 올려서 함께 비벼먹는 음식이다. “제사 음식에는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안 넣지. 나물들도 모두 참기름과 간장이나 소금으로만 간한 것이고 국수를 비빌 때도 그렇게 하지.” 특별히 한 가지 강한 맛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유다.

보백당 불천위 제사에 올라가는 시금치

시금치, 도라지, 콩나물, 고사리, 무나물이 잘 비빈 쫄깃한 국수가락과 어울려 입안에서 모시적삼 같은 담백한 춤을 춘다. 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7:3으로 섞고 참기름이나 식용유 1숟가락과 물을 넣어 반죽한다. 밀가루를 뿌려가면서 큰 홍두깨로 밀어서 면을 만든다. 콩가루의 고소한 맛이 풍긴다.

종부는 “요즘은 꼭 그렇게 국수를 만들지는 않아! 힘들기도 해서. 예전 시어머니께서는 꼭 그렇게 만드셨지만.” 밤 8시에 제사를 올리고 한참이 지난 후 늦은 밤에 먹는 음식이다. 때를 놓쳐 먹는 음식은 위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메국수 나물 비빔밥’은 힘들게 지낸 제사의 노고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속도 편하다. 자연의 향취를 담은 음식이다.


불천위 제사의 풍경은 기록으로 남길 유산
보백당 불천위 제사

보백당 종가는 조선초기 문신인 김계행(1431-1517)의 집안이다. 김계행의 호가 보백당이다. 고려개국공신 삼태사 한 명인 김선평의 후예다. 안동김씨 묵계파의 입향조(어떤 마을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인셈이다. 그는 젊은 날에는 성주향교, 충주향교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50세의 늦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날렸다. 낙향해서는 송암폭포 위에 ‘만휴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묵계서원은 1687년(숙종13년)에 창건되었다. 김계행과 응계 옥고(1382~1436:세종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학자)의 위패를 모셨다.

나풀나풀 봄바람이 불고 새들이 노래하는 계절이 되면 묵계서원과 만휴정에는 여행객들이 모인다. 만휴정에서 내려다보는 송암폭포는 소박한 절경이다.

86세로 생애를 마감한 김계행은 당시로 보자면 장수를 했다. 종부 김정희(79)씨는 “우리 집안이 장수한 어른이 많지. 시어머니도 91세까지 사셨어”라고 말한다. 김씨도 아직까지 책을 젊은 사람들처럼 읽을 정도로 건강하다. 종손 김주현(81. 19대손)씨도 청년 못지않다. 종가는 지금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대구와 안동을 날마다 다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불천위제사의 풍경은 신기하다.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필수품처럼 된 시대, 연애질하는 사진조차 달나라까지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 흰옷을 입은 40여명의 사람들이 제사를 올리는 풍경은 놀랍다. 마치 조선시대를 옮겨놓은 것 같다.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이나 문화재를 복원하려는 사람들이 보백당 불천위 제사를 자주 찾는다. 이날도 <사단법인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의 김기원 팀장이 출동해서 제사의 처음과 끝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기록으로 남기자는 차원입니다. 기록으로 남겨야 후손들도 알 수 있고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무심한 듯하지만 소박하고 정갈한 오늘날 건강식
종부 김정희씨는 21살에 종손 김주현씨와 결혼했다. 종손이 경북대학교 사범대 4학년 때다. 새색시는 종손의 졸업식날 대학교문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줍게 서성였다. “궁금하기는 했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지”라고 그날을 웃으면서 회상한다. 세상일에 수줍은 아낙네였다. 종손이 서울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곁에 있었다. 휴가라도 나오면 두 사람은 ‘전쟁과 평화’ 같은 영화를 손 꼭 붙잡고 보러갈 정도로 낭만적인 신혼을 보냈다. “종가 시집와서 일이 많았어. 그때는 몰랐지, 얼마나 일이 많은지. 지금도 고개가 설레설레 해”라고 말한다.

교실 8개를 빌려 제사상을 6개나 차린 적도 있었다. 종부는 그때 절을 24번이나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나던 때도 있었다. 32살 넘어 약국을 13년간 운영했는데 “그때는 정말 즐겁웠지,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했지만 오는 사람들 인사하고 지내는 게 좋았어”라고 말한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종손은 30년 넘게 역사 선생님으로 일했고 경상북도 교육감을 두 번 지냈다. 퇴임을 한 후에는 ‘보백당장학문화재단’을 만들어 선조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16년 전 문중사람들을 모아 돈을 모으고 지금까지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제사가 끝나고 음복하기 위해 접시에 담은 떡

종부의 손을 거쳐 나오는 떡들은 넉넉한 인심을 담아 두툼하고 쫄깃하다. 경단, 부편, 잡과편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배추전은 싱거운 맛이 매력이다. 싱싱한 배추 잎을 따서 소금물에 잠깐 적셨다가 밀가루와 물을 섞은 것에 배추잎을 적시고 프라이팬에 굽는다. 평상시에도 자주 해먹는다. 진한 맛이 없어서 배추 자체의 아삭아삭한 맛이 더잘 느껴진다.  김주현씨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주로 채소로 음식을 많이 해주셨지요, 다시마나 해산물을 좋아하셔서 그런 요리를 잘 해주셨어요”라고 말한다. 이댁의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 중에 하나다. 옛 선조들의 무심한 듯하지만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이 오늘날 건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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