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출세하는 것도 안 바랐어요, 그저 건강하게 일을 마치고 평범하게만 지내길 바랐지, 직장생활 할 때도 만날 아팠어”라고 고씨가 말한다. 백씨는 한동안 그 상처 때문에 고생을 했다. 38살 뒤늦은 나이에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서 정년퇴직까지 다녔다. 시대의 아픔이 콕콕 박힌 상처는 여러 세대가 지나도 오래가는 법. 지금 백씨는 몸이 좋지 않다. 그 곁을 고씨가 지키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인복이 많아, 훌륭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만났지, 시어머니는 딸처럼 예뻐해 주셨어”라고 말한다.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난다. “우리 대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밥 먹이셨어, 편찮으실 때 외상값 갚으러 시장에 대신 나가니깐, 외상값 안 받아도 좋으니 빨리 나으셔야 한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고씨는 2004년 큰아들, 백정우(56) 씨가 내려오기 전까지 덩그런 고택을 홀로 지켰다. “먹고 입는 데보다 집 고치는 데 돈이 더 들었지, 비도 세고. 집을 지키려고 시집왔나 싶더라구”라고 말한다. 지금 고씨는 훨씬 홀가분해졌다. 아들과 며느리 덕분이다. 머무는 방 앞에는 고씨가 만든 작은 꽃밭이 있다. 돌멩이로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울긋불긋한 꽃들을 심었다. 고씨는 ‘나만의 꽃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