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손부부가 건강을 지킨 비법은 한 가지 더 있다. ‘사랑’이다. “무슨 사랑?” 일흔이 넘은 두 사람은 여전히 신혼부부처럼 정겹다. 서로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하하하” 웃음꽃을 피운다. 세상에 절대로 남의 눈을 속일 수 없는 것이 사랑과 방귀라고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솔솔 밥상에서 피어오른다. “우리는 연애 결혼했죠. 데이트 신청하는 남학생들이 많았는데 모두 거절했죠. 근데 지금 남편만은 마음에 쏙 들었어요. 어딘가 어수룩하고 투박해 보이는 점이 좋았지요”라고 함씨가 말한다. 60년대 초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세브란스 의과대학 학생이었던 이씨와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학생이었던 함씨는 대학 때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일을 하는 여성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그렇게 되지는 않았어요”라고 함씨는 말한다. 그는 학생 때 나라를 위한 지도자가 되라는 이태영 선생(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의 강의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는 결혼하고 광명시 고택에 내려와서 살았다. 종가의 제사도 지내고 문중의 일들을 보살폈다. 남편은 학업을 모두 마친 것이 아니라서 서울 신촌으로 출퇴근을 했다. 인턴을 하면서 집에 내려오지 않은 적도 많았다. 어린 신부는 낯선 환경에서 무섭기도 했다. 당시 그곳은 허허벌판이었다. “집 뒤에 집안 조상들의 무덤이 많았어요. 이원익 선생의 유언 때문이었어요.” 바람이 휙휙 불거나 폭풍우 치는 밤이면 이불 깃을 꼭 쥐고 잠을 청했다.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어요”라고 함씨는 말한다. 이씨도 “아내 같은 사람은 없다. 고택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에도 아내는 조상들이 물려준 것을 우리 대에 없애버리는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했죠”라고 서로를 칭찬한다. 이씨는 젊은 날 아내의 사진을 최근까지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지금 그 사진은 빛바랜 누런색을 입고 거실액자에 끼어있다.
|
No comments:
Post a Comment